쳉스토호바의 성모

쳉스토호바의 성모 성화는 14세기부터 폴란드의 야스나 고라에서 공경을 받아 왔습니다. 이 성화는 길을 가리키시는 동정녀를 나타내는 호데게트리아 도상 유형에 속하며, 마리아의 얼굴에 보이는 흉터는 1430년 후스파의 습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역사의 증언으로서 의도적으로 보존되었습니다. 이 글은 성화의 기원과 그 도상 프로그램,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 영성 안에서 쳉스토호바가 차지하는 독특한 자리를 살펴봅니다.
쳉스토호바와 폴란드의 가톨릭 정체성: 요한 바오로 2세와 야스나 고라 성지
저 멀리 폴란드, 쳉스토호바의 야스나 고라, 곧 밝은 산 지역에서 우리는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 신심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그 신심을 길러 낸 그 나라의 가장 큰 성모 성지를 만납니다. 이 성지는 오늘날에도 폴란드 민족의 영적 활력의 중심이며, 해마다 평균 4백만 명에 이르는 순례자가 찾아오기까지 합니다.
큰 축일들은 5월 3일 폴란드의 여왕이신 성모, 8월 1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승천, 8월 26일 야스나 고라의 성모 기념, 그리고 끝으로 9월 8일 성모 탄생 축일이며, 여기에는 평균 250만 명이 모입니다.
성지의 생활은 해마다 변함없이 유지되는 일정표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기적의 성화는 아침 6시부터 밤 9시 야스나 고라의 탄원 기도 때까지 공개됩니다. 여러 사목 활동 가운데 야스나 고라의 묵주 기도 가족을 특별히 언급합니다.
성지의 역사적 기원은 이집트의 은수자 성 바오로 수도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수도회는 13세기 헝가리에서 생겨났으며, 폴란드와 헝가리의 왕이었던 앙주의 루도비코 왕의 후원으로 1382년에 야스나 고라 언덕에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폴란드 안팎에서 순례의 목적지가 된 성모 성화의 존재가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순례자들의 발길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그리하여 순례자를 맞이할 공간을 넓히려고 서로 다른 건축 양식의 건물들을 기존 건물 위에 잇달아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성지의 특별한 사건 하나는 1655년 스웨덴이 폴란드를 침공하였을 때 그에 맞선 저항이었습니다. 성지는 순례자들이 바친 여러 예물을 도난으로부터 지키려고 여러 세기에 걸쳐 요새화되어 있었습니다. 이 저항 덕분에, 또 요한 카시미르 왕의 신심과 더불어, 1656년 4월 1일에 마리아께서는 폴란드의 여왕으로 선포되셨습니다. 성화의 대관식은 1717년 9월 8일에 거행되었고, 1746년 폴란드 헌법에는 “이 나라는 자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여왕, 곧 기적으로 이름난 쳉스토호바 성화의 동정 마리아께 헌신하며, 그분께서는 어려울 때에 보호를 베풀어 주신다”라고 적혔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점령기 동안 침략자들에 맞선 여러 세력의 책임자들이 이 성지에서 만났으며, 그리하여 야스나 고라는 희망과 승리와 자유의 상징이 되어 폴란드의 영적 수도가 되었습니다.
기적의 성화는 온 세계에 있는 폴란드인들의 상징입니다. 정치와 문화와 영성의 여섯 세기 역사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중심으로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폴란드를 이해한다는 것은 야스나 고라가 이룬 정체성의 형성을 의식한다는 뜻입니다.
이 성화와 관련된 기적들은 성지의 문서고에서 151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이전에도 다른 기적들이 있었으리라고 보는 것이 그럴듯합니다. 폴란드의 종교 문화는 성모 성화와 만날 때 보통 말하지 않고 그저 바라봅니다. 이는 폴란드 신자들과 맺은 연대와, 마리아 신심이 폴란드의 민족정신과 이루는 일치를 드러냅니다. 신앙의 온전함과 인간적, 그리스도교적, 민족적 가치의 보호자이신 그분의 전구가 지닌 효력은 모든 사회 계층과 모든 시대에서 온 수천 점의 ex voto에서 확인됩니다.
1946년에 A. 흘론드 추기경은 교황 비오 12세의 영감에 따라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께 나라를 봉헌하였습니다. 1956년 8월 26일에는 폴란드의 마리아 여왕 선포 300주년을 맞이하여 폴란드 주교단이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서원을 하였으며, 그 본문은 아직 코만차의 감옥에 있던 수석 대주교 스테판 비신스키 추기경이 쓴 것이었습니다. 이 행위는 “위대한 노베나”라고 불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촉발하였고, 그것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쳉스토호바의 성모께서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받으신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이로써 서로 가까워짐과 여러 문제에 대한 민감함, 그리고 교회에 대한 책임을 향한 양심의 깨어남과 마리아께 대한 충실함의 굳건해짐이 강화됩니다.
그 성지에서 지역 교회는 보편 교회와 하나가 됩니다. 1979년 6월 4일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하신 마리아께 대한 봉헌 행위 이래로, 그 기적의 성화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성모, 곧 동방 교회들과 서방 교회의 일치의 성모로 여겨집니다.

도상 프로그램: 호데게트리아 유형, 1430년의 흉터, 그리고 중세의 상징
이 성화는 왼손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를 나타냅니다. 그분의 눈은 바라보는 이를 향합니다. 얼굴 왼쪽으로는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며 망토에 가려져 있습니다. 색조는 무엇보다 짙은 갈색과 옅은 갈색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왼쪽 뺨에는 두 개의 선이 있는데, 뺨의 절반을 나란히 가로지르며 목 쪽으로 길게 이어집니다. 세 번째 선은 코 높이에서 뺨을 가로질러 지나갑니다. 성모님의 이마 위에는 여섯 꼭짓점의 별이 있습니다. 망토와 옷은 푸른색이고 예수님 옷의 색은 진홍색입니다. 성화의 배경은 옅은 푸른색이며 은은한 초록빛이 감돕니다. 아기 예수님은 팔을 들고 계시며 왼손에는 복음서를 들고 계십니다.
교훈적인 이야기는, 기도를 드리고 성가정이 식사를 하던 식탁 위에 성 루카가 그린 그림에 대하여 전합니다. 그 성화는 예루살렘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져 한 성전에 모셔졌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레오 공작이 그 성화의 아름다움에 반하자 황제가 값을 매길 수 없는 이 성화를 그에게 선물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뒷날 전쟁으로 말미암아, 이미 얻은 기적들로 상당한 명성을 지니고 있던 그 성화는 야스나 고라 시로 옮겨져 성당에 모셔졌고 바오로회 수도승들의 보살핌에 맡겨졌다고 합니다.
역사와 고고학의 복원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는 그 성화가 1382년에 바오로회 수도승들과 함께 야스나 고라에 이르렀음을 압니다. 그러나 1430년, 신성 모독적인 습격이 벌어지는 동안 그 성화는 칼에 찔려 세 조각으로 부서졌습니다. 성화의 재건은 1434년에 이루어졌으며, 이는 중세 회화의 특징과, 아마도 그리스도교 제1천년기에 그려졌을 성화 본래의 밑그림을 지닌 옛 그림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작업이었습니다.
동정녀 성화에 있는 선들은 흉터를 상징하며 본래의 화폭에 가해진 칼자국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복원가들은 성화만이 아니라 기억의 예술로서 마리아의 삶까지도 보존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성화는 그 도상학적 독창성 안에서 큰 예술적 가치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성화가 성 요한 바오로 2세께 지닌 의미에 대하여, 여기에 1979년에 하신 그분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마음 안에서 교회의 심장과 조국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자, 깨어 있는 사목적 경청 가운데 이 거룩한 곳에 그토록 여러 번 왔습니다. 참으로 야스나 고라는 모국과 온 세계의 폴란드인들에게 순례의 목적지일 뿐만 아니라 민족의 성소입니다. 어머니의 마음 안에서 민족의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를 느끼려면 이 거룩한 곳에 주의 깊게 귀 기울여야 합니다. 사실 이 심장은, 우리가 알다시피, 민족의 모든 사건과 함께 고동칩니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의 마음이 지닌 이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지 알고자 한다면, 여기에 와서 이 성지에 주의 깊게 귀 기울여, 온 민족의 삶이 자기 어머니시며 여왕이신 분의 마음 안에서 울리는 메아리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쳉스토호바의 성모께 대한 신심과 폴란드 백성의 그리스도교적 정체성 안에서 그것이 지니는 역할은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Redemptoris Mater에서 특별히 깊이 있게 환기됩니다. 이 회칙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민족들에게 희망의 표징이신 분으로 성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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