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제롬과 온전히 하나님에 의해 요구받는 인간

«Dominé, docé-nos ora ré»: Paulo, o Pai nosso e Maria no cenáculo

저는 진정으로 그것이 그렇게 믿어지는 것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과 결합된 사람이 정의로워질 수 없다고 합니다.
(요나서 9:2)

사도 경신례 수요미사, 성 제로니모 사도 기념일

이 주간의 경신례는 성 제로니모 사도 기념일을 맞아, 인간 본성의 가난함과 창조주 앞의 위대함이라는 두 가지 심오한 진리를 대조적으로 제시합니다.

I. 의로운 자의 가난함, 신의 위대함 앞에

요나서(Jób)는 인간 정의가 신 앞에 어떻게 서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요나는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은,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의로운 자가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깨달음에서 나옵니다. 그는 인정합니다. “사람은 결코 자신의 공로로 의로워질 수 없다” (요나 9:2). 이는 순결한 영혼의 고백입니다.

요나서에서 이어지는 시는 신의 전능하심에 대한 찬양입니다. 신은 산을 옮기고 땅을 흔들며, 해를 막고 별들을 봉인하십니다. (요나 9:5-10) 이러한 시는 신의 위대하심을 묘사하지만, 요나는 진정한 충성심에서 신의 보이지 않는 현존을 인식합니다. “만약 그가 갑자기 나를 물어본다면, 누가 대답할 수 있겠는가?” (요나 9:12) 그는 신의 자비와 주권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표현합니다. 그의 기도는 간구이며, 답을 요구하기보다 단순히 들려달라는 것입니다. (요나 9:14-16)

하느님은 피조물에게 설명할 의무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이 신비로움 속에서도 구원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II. 절대적인 추종

루카 복음서(Luke)는 요나의 놀라움을 결단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세 사람이 그분과 함께 걸어가던 중, 각자의 추종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의 환상을 깨뜨립니다. 첫 번째 사람에게 예수님은 야생 동물이 은신처를 가지고 있듯이, 사람에게는 쉬어갈 곳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루카 9:57-58) 제자의 삶은 주님의 가난함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람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십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절대적인 헌신을 요구하십니다.한 사람이 먼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라고 요청하자, 그는 죽은 자들을 장사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라고 한다. (루카 9,59-60) 다른 사람에게는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농부에게 손을 들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제시한다. 누구든지 손을 쟁기 자에 대고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루카 9,62). 직진하는 경작에는 앞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며, 과거에 대한 향수는 현재를 심는 것을 방해한다. 예수는 관객을 모집하지 않고, 제자를 부름한다. 극단성은 단단함이 아니라, 사랑의 명료함이다. 반쪽 마음은 충분하지 않다.

III. 제롬, 신성한 글과 진리

성 제롬의 기억은 이 두 독서의 만남을 비춘다. 그는 고백의 가난과 극단적인 따름이 성서 페이지에서 만난 인물이다. 약 347년경 달마티아 스트라이돈에서 태어난 제롬은 하나님의 말씀을 라틴어로 번역한 볼가타의 작성자로, 교회는 1000년 이상 이 작품을 기도해 왔다. 칼리스 사막과 베들레헴 동굴은 그의 쟁기이며, 신성한 언어 연구는 그의 기도이며, 세상으로부터의 포기(renunciation)는 직진하는 쟁기의 모습이다. 그의 엄격함은 인간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그 자리에 두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구체적인 방식이었다.

베들레헴의 박사인 제롬은 이사야 주석 서문에서 “성경의 무지함은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함이다”라고 썼다. 이는 요직에 머무는 요나, 낮에 빛을 보는 제자들과 같은 이들이 밤에 고뇌하는 요나처럼, 성서 없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진실이다. 성서는 하나님을 아는 얼굴이며,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요나의 고뇌, 루카의 요구, 제롬의 노동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오직 삶을 바치는 것만이 진리를 진정으로 아는 길임을 보여준다.

IV. 마리아, 피에트가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

독서에서 마리아의 이름은 없지만, 신학은 그녀를 인간 응답의 기초, 척도, 그리고 정점으로 본다. 요나는 시련 중에 기도하며, 제자들은 왕국의 비용을 묻고, 한 창조물은 기쁜 마음으로 불가능한 소식을 받아들인다. 그 사람, 케카리토메네, 은혜로 가득 찬 사람은, 루카 1장 38절의 말씀에 따라, “내가 주님의 말씀대로 되게 하소서”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네’에는 요나의 절박한 질문이나 제자들의 주저함이 없다. 오직 순수한 순응이 있다.

이유로, 마리아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 쟁기이다. 성모는 예언자 시메온이 예언한 칼과 이집트 피난, 나자레에서의 오해, 그리고 골고타에서의 고독을 감내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순간에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베르룰레와 몽포르트 학교는 그녀를 완벽한 제자의 형태로 보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세상에 나아가는 그분의 방식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스도는 순종하는 방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피에트(fiat)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요나의 위대함과 제자들의 극단적인 질문 앞에, 교회는 마리아에게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응답하는 것은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며, 그 헌신은 창조물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진정한 위대함으로 이끄는 것을 배운다.

대학원 마리아론 과정

마리아론에 대한 지식을 심화시키고자 하십니까? Locus Mariologicus에서 제공하는 *마리아론 대학원 과정*을 만나보세요. 이 학문적 과정은 엄격한 신학, 영적 삶, 그리고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을 결합합니다.

📌 자세히 알아보기 및 신청: 마리아론 대학원 과정

Related Articles

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