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의 성 안토니오의 마리아론

A mariologia de Santo António de lisboa

리스본의 안토니오

(1231년 선종)

그의 생애에 관한 정보는 이른바 legendae에서 얻어지는데, 이는 그를 둘러싼 성덕의 명성과 그가 주역이 된 기적적 사건들로 말미암아 그가 죽기도 전에 이미 여러 갈래로 늘어났습니다.

안토니오는 1195년 무렵 리스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주 젊은 나이에 성 아우구스티노 의전 사제회에 입회하였고 코임브라에서 학업을 하였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작은 형제회로 옮겨 갔고, 수도회 제1차 총회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직접 만났습니다. 그는 자기 수도회의 직무 수행과 백성에게 하는 설교 직무를 번갈아 하였는데, 그 설교에서 그는 자신의 성덕의 모범과 개인적 카리스마의 매력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마땅히 복음 박사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1231년 파도바 근처에서 젊은 나이에, 겨우 서른여섯 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에 시성되었습니다. 1946년에는 비오 12세 교황에 의하여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의 마리아론 사상은 어떤 신학 안에 기술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놓여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 깊이가 부족하지 않고 매우 예리한데, 이는 그가 자신을 표현한 연설 장르 덕분이며, 그 장르를 통하여 그의 인격에서 가장 독창적인 특성들이 드러납니다. 곧,

  • 사고의 명료함,
  • 언어의 단순함, 그리고
  • 자기 청중과 소통하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직관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동정 마리아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케리그마적 마리아론라고 규정할 수 있으니, 가르침이라기보다 선포가 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설교에, 그리고 분명히 무엇보다도 그 시대에 거행되던 마리아 축일들을 위한 설교집에 헌신한 까닭을 이해하게 됩니다.

  • 정결례,
  • 주님 탄생 예고,
  • 승천
  • 탄생.

사순 제3주일 설교도 덧붙여야 하는데, 거기에서 그는 루카 11,27을 주해합니다. 당신을 낳은 태가 복됩니다.

그는 구약과 신약의 많은 본문을 마리아께 적용하며, 그에 앞선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전통을 자주 언급합니다. 그의 마리아론 교리는 마리아의 생애의 모든 신비를 아우르며, 하느님 모성이라는 근본 진리를 강하게 강조하는데, 안토니오는 그 안에서 마리아를 향한 하느님의 선택을 관상합니다. 원죄 없으신 잉태의 신비에 대한 그의 태도에 관해서는 얼마간 불확실함이 제기됩니다. 그의 설교집에는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우리의 모후, 죄인들의 피난처, 구원으로 이끄는 별이신 그분을 찬탄하고 찬미하고 사랑하고 부르라는 열정적인 권고가 자주 되풀이됩니다.

(사순 제3주일)

마리아의 진복

그때에 한 여자가 군중 가운데에서 목소리를 높여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을 낳은 태와 당신이 빨았던 젖이 복됩니다(루카 11,27). 신랑은 아가에서 신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목소리가 내 귀에 울린다. 참으로 그 목소리는 감미롭구나(아가 2,14). 감미로운 목소리란 영광스러운 동정녀께 드리는 찬미이니, 그것은 신랑 곧 같은 동정녀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의 귀에 매우 감미로운 소리를 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가, 또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복되신 마리아를 찬미하고 그분의 아드님께 말합시다. 당신을 낳은 태와 당신이 빨았던 젖이 복됩니다.

복되다는 것은 잘 자랐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모든 것을 지니고 아무런 악도 바라지 않는 이가 복됩니다. 자신의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이가 복됩니다.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동정녀의 태는 복되니, 그분께서는 아홉 달 동안 온갖 선, 지극한 선, 천사들의 복락, 죄인들의 화해를 모시기에 합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씁니다. “육신에 따라서는 오직 아드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화해됩니다. 그러나 신성에 따라서는 우리가 아드님하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를 당신 자신과 화해시키신 분은 삼위일체이시니, 삼위일체께서 오직 말씀만이 육신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동정녀의 태는 복되며, 복자 아우구스티노는 본성과 은총론이라는 책에서 그 태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는 제외합시다. 주님의 영예를 위하여 나는 그분에 관해서는 죄에 관한 어떠한 문제도 제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죄가 없으셨음이 알려진 분을 잉태하고 낳기에 합당하셨던 그분께, 모든 면에서 죄를 이기도록 얼마나 더 큰 은총이 주어졌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동정녀를 제외하고, 만일 모든 성인이 한자리에 모여 자기에게 죄가 있는지 질문을 받는다면, 요한이 말한 것 말고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없을 것입니다 (1 요한 1,8)”. 반면에 저 영광스러운 동정녀께서는 보호되시고 특별한 은총으로 가득 차시어, 처음부터 온 우주의 주님으로 모신 분을 당신 태의 열매로 지니셨습니다.

그러므로 복된 것은 그 태이니, 아드님께서는 당신 어머니를 찬미하시며 아가에서 그 태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배는 나리꽃으로 둘린 밀 더미 같구나”(아가 7,2). 영광스러운 동정녀의 태는 밀 더미와 같았습니다. 쌓여 있다 함은 공로와 보상의 모든 특전이 그분 안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고, 밀알로 되어 있다 함은 온 이집트가 굶주려 멸망하지 않도록 참된 요셉의 개입으로 곡식이 창고에 간직되듯 그 안에 놓였기 때문입니다(참조 창세기 41,36). 밀을 triticum이라 부르는 것은 깨끗이 손질된 뒤 곳간에 보관되기 때문이거나, 그 낟알이 빻아지고 부수어지기 때문입니다. 속은 희고 겉은 붉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니, 그분께서는 영광스러운 동정녀의 복된 태라는 방에 아홉 달 동안 숨어 계셨고, 그런 다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맷돌에 빻아지셨습니다. 흼은 생명의 무죄함을, 붉음은 피 흘리심을 뜻합니다. 이 행복한 태는 나리꽃으로 둘려 있었습니다. 젖에서 온 듯하다 하여 그렇게 불리는 나리꽃은 그 흼으로 말미암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동정성을 뜻합니다. 그분의 태는 둘려 있었으니, 곧 겸손의 골짜기로 튼튼해졌습니다. 나리꽃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라는 이중의 동정성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외아드님이신 하느님께서는 잉태되실 때에 동정녀에게서 육신의 실재를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실 때에는 당신 어머니 안에 동정의 온전함을 보존하셨습니다”. 당신을 모신 그 태는 이토록 복됩니다.

참으로 복되니, 그 태가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천사들의 주님이시며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고 세상의 구원자이신 당신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딸이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가난한 동정녀가 아드님을 모셨습니다.

케루빔과 세라핌이여, 천사들과 대천사들이여, 얼굴을 숙이고 머리를 조아려 하느님 아드님의 성전, 성령의 성소, 나리꽃으로 둘린 복된 태를 공경하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당신을 모신 태가 복됩니다. 아담의 지상 자녀들이여, 이 은총과 이 특별한 특전을 받은 그대들이여, 경건한 믿음과 마음의 통회로 땅에 엎드려 참된 솔로몬의 높고 드높은 상아 옥좌를 공경하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당신을 모신 태가 복됩니다!

이어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젖을 먹인 젖가슴. 그것에 관하여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스러운 암사슴, 우아한 영양처럼, 그 젖가슴이 언제나 너를 흡족하게 하고, 그 사랑으로 네가 늘 사로잡히기를”(잠언 5,19). 자연학 논고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암사슴은 늑대가 사람을 무서워하여 사람이 다니는 길을 피한다는 것을 알고서 통행이 잦은 길에서 새끼를 낳는다는 점을 눈여겨보십시오. 그 사랑받는 암사슴은 복되신 마리아이시니, 그분께서는 은총으로부터, 정해진 때에, 사람이 다니는 길 곧 피난처에서 우아한 암사슴 곧 아기이신 아드님을 낳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루카는 이렇게 씁니다. “마리아는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분을 위한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루카 2,7). 우리가 불사의 옷을 받을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본문에 관하여 글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여관에 자리가 필요하시니, 우리가 하늘에서 더 많은 거처를 가질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다”(Glossa interlineare).

그리스도인이여, 온 세상이 사랑하는 이 암사슴의 젖가슴이 언제나 그대를 취하게 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그대가 모든 현세의 것을 잊고 취한 이처럼 그대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돌아서기를 빕니다(참조 필리피 3,13). 그런데 “내가 그대를 취하게 한다”라고 말할 때에는 크게 놀라야 합니다. 그 까닭은 젖가슴에는 취하게 하는 포도주가 아니라 매우 감미로운 젖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들어 보십시오. 신랑이시며 그분의 아드님께서는 아가에서 그분을 찬미하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어찌 그리 아름답고, 기쁨 가운데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가! 그대의 키는 야자나무 같고, 그대의 젖가슴은 송이 같구나”(아가 7,6-7). 그대는 영혼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그대는 몸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나의 어머니, 나의 신부, 사랑하는 암사슴이여, 기쁨 가운데, 곧 영원한 생명의 보상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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