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교서 “Desiderio desideravi” 안의 마리아

Maria na carta apostólica «Desiderio desider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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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derio desideravi” I: 구원 역사의 사건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참된 현존인 전례

처음부터 교회는 자신이 주님의 만찬을, 비록 거룩한 것이라 할지라도, 재현하는 것이 아님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며, 더구나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보시는 앞에서 스승님 생애의 그 지극히 높은 순간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교회는 성령의 빛을 받아, 예수님에게서 보이던 것,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던 것, 그분의 말씀과 행위, 강생하신 말씀의 구체성, 그분의 모든 것이 성사 거행 안으로 건너갔음을 깨달았습니다.

“Desiderio desideravi” II: 부활하신 분과 이루는 인격적 만남의 자리인 전례의 강력한 아름다움

  • 전례의 모든 강력한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이 우리에게 하나의 개념, 하나의 관념, 하나의 생각이라면. 부활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사도들이 아무리 권위가 있다 하더라도, 다른 이들의 기억에 대한 기억일 뿐이라면, 그분과 이루는 참된 만남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육신이 되신 말씀의 새로움이 다 소진되었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오히려 강생은 역사가 아는 유일하게 새로운 사건일 뿐 아니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서 우리에게 친교의 길을 열어 주시려고 선택하신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살아 계신 그분과 이루는 만남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 그분의 파스카와 이루는 우리의 첫 만남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의 삶에 새겨지는 사건, 곧 우리의 세례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사상에 대한 지성적 동의도 아니고, 그분께서 부과하신 행동 규범에 서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술적 행위가 아닙니다. 마술은 성사의 논리와 정반대이니, 하느님을 좌우하는 힘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그래서 유혹자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강생과 완전한 연속성 안에서, 성령의 현존과 활동에 힘입어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부활할 가능성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Desiderio desideravi” III-V: 그리스도의 몸의 성사인 교회, 그리고 영적 세속성에 맞서는 해독제인 전례

  • 신펠라지우스주의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얻어 낸 구원이라는 자만으로 우리를 취하게 한다면, 구원의 전례 거행은 신앙으로 받아들인 구원이라는 선물의 무상성을 선포함으로써 우리를 정화합니다. 성찬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성취가 아니니, 마치 우리가 하느님과 우리 형제들 앞에서 그것을 자랑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모든 거행의 시작은 내가 누구인지 나에게 상기시키며, 내 죄를 고백하도록 청하고, 평생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천사들과 성인들과 모든 형제자매에게 나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해 달라고 간청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그분의 집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않으며, 구원받으려면 그분의 말씀이 필요합니다(참조 마태오 8,8). 우리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말고는 다른 자랑이 없습니다(참조 갈라티아 6,14). 전례는 금욕적 도덕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전례는 온순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 삶을 새롭게 하는 주님의 파스카 선물입니다. 우리와 함께 파스카를 먹고자 하시는 그분의 열망에 이끌려서만 다락방에 들어갑니다. Desiderio desideravi hoc Pascha manducare vobiscum, antequam patiar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루카 22,15).

“Desiderio desideravi” VI-VIII: 파스카 신비에 대한 경탄, 그리고 진지하고 생생한 전례 양성의 필요성

  • 전례 연구로서의 양성을 위한 통로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전례 운동 이래 이 방향에서 많은 일이 이루어졌고, 많은 학자와 학술 기관의 값진 기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을 학문의 영역 밖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널리 퍼뜨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신자가 전례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앎 안에서 자라날 수 있어야 하니, 이것이야말로 전례에 관한 모든 앎과 실천의, 또한 그리스도교 거행의 발전의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이며, 이로써 기도문과 예식의 역동성과 그 인간학적 가치를 이해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Desiderio desideravi” XIX: ars celebrandi와 파스카 신비에 대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참여

  • 첫 공동체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빵을 뗄 때, 그 공동체는 교회의 첫걸음을 함께하시는 마리아께서 보시는 앞에서 그렇게 합니다. “그들은 몇몇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행전 1,14). 동정 어머니께서는 사도들에게 맡겨진 당신 아드님의 행위들을 지켜보십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씀을 받아들이신 뒤 육신이 되신 말씀을 당신 태 안에 간직하셨듯이, 동정녀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몸을 이루는 그 행위들을 교회의 태 안에 다시 한번 간직하십니다. 성품성사로 받은 선물에 힘입어 그 행위들을 되풀이하는 사제는 동정녀의 태 안에 간직됩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일러 줄 규칙이 아직도 필요합니까?
  • 성 프란치스코가 노래하였듯이 교회가 되신 동정 마리아의 태 안에 간직된 그분 사랑의 불을 땅에 지피는 도구가 된 사제들은, 그들의 서품에서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고자 하시는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자신을 내맡깁니다. 성령의 활동은 그들에게, 자신이 죄인임을 의식하는 베드로의 두려움으로(참조 루카 5,1-11), 고통받는 종의 굳센 겸손으로(참조 이사야 42장 이하), 날마다의 직무 수행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에게 먹히고자 하는 열망으로 성찬의 회중을 주례할 가능성을 줍니다.
  • 논쟁을 버리고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함께 들읍시다. 친교를 지키고, 전례의 아름다움에 계속 경탄합시다. 파스카가 우리에게 주어졌으니, 우리와 함께 그것을 드시고자 주님께서 여전히 지니고 계신 열망이 우리를 지켜 주게 합시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보시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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