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글: Prof. Dr. Daniel C. Afonso · 업데이트
Confidens hoc ipsum, quia qui cœpit in vobis opus bonum, perficiet usque in diem Christi Jesu.
필리 1,6
연중 제30주간은 서로 멀어 보이지만 실은 하나인 두 장면을 교회 앞에 펼쳐 놓습니다. 한편에는 에페소의 감옥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들 가운데 가장 다정한 편지를 받아쓰게 하며,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시작하신 것을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고백합니다. 다른 한편에는 한 바리사이의 식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재판에 앞선 피고처럼 감시를 받으시면서도, 병으로 몸이 부은 한 사람의 손을 잡아 안식일 한가운데에서 그를 고쳐 주십니다. 제1독서 필리 1,1-11은 첫날부터 이어진 복음 안의 친교를 노래합니다. 복음 루카 14,1-6은 율법이 쉬라고 명하던 날에 바로 그 하느님의 일이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도의 신뢰와 주님의 행동 사이에는 단 하나의 실이 흐르고 있으니, 은총은 한번 시작되면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확신입니다.
I. 하느님께서 시작하시고 중도에 버려두지 않으시는 일
필리피서의 서두는 이미 항구함의 신학 전체를 담고 있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바오로는 omnibus sanctis in Christo Jesu, qui sunt Philippis, 곧 필리피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의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여기서 성도라는 말은 도덕적 엘리트를 가리키지 않고 세례로 구별되어 봉헌된 백성을 가리킵니다. 사도는 신자들의 연약함에서 출발하지 않고 하느님의 신실하심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기억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기쁨이 됩니다. cum gaudio deprecationem faciens, 곧 쇠사슬에 묶인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 독서의 교의적 중심은 여섯째 절에 있으며,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교 영성의 반석입니다. Qui cœpit in vobis opus bonum, perficiet usque in diem Christi Jesu, 여러분 안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cœpit, 곧 “시작하셨다”라는 동사는 주도권을 하느님께 돌리고, perficiet, 곧 “완성하실 것이다”라는 동사는 그 끝맺음 또한 하느님께 돌립니다. 구원은 인간이 세우고 하느님께서 축복하시는 건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시작하시고 지탱하시고 완결하시는 일입니다. 신자의 신뢰는 자기 자신의 한결같음이 아니라, 시작하신 분의 한결같음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평은 종말론적입니다. dies Christi, 곧 그리스도의 날, 뿌려진 모든 씨앗이 열매를 맺을 그날입니다.
그러고 나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여정 전체를 그려 보이는 세 가지를 청합니다. 그는 사랑이 자라기를 청합니다. ut caritas vestra magis ac magis abundet, 곧 여러분의 사랑이 더욱더 자라기를 청하는데, 이 성장은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in scientia et in omni sensu, 곧 지식과 온갖 분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는 더 나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을 청합니다. ut probetis potiora.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리피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날에 순수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이르기를, repleti fructu justitiæ, 곧 의로움의 열매로 가득 차기를 청합니다. 아는 사랑, 분별하는 판단, 열매 맺는 삶입니다. 하느님의 좋은 일은 인간의 응답을 면제하지 않고, 그 응답을 부르고 빚어내며 꽃피우게 합니다.
II. 안식일의 치유와 지켜보던 이들의 침묵
루카의 장면은 적대적인 시선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Ipsi observabant eum, 그들이 그분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 동사에는 사법적 감시, 곧 실수를 기다리는 첩자의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음식을 드시러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시는데, 그 환대는 함정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분 앞에는 수종병을 앓는 사람, homo quidam hydropicus가 있습니다. 갈증을 채우지 못한 채 몸을 부풀게 하는 물에 사로잡힌 몸으로, 탐욕의 오래된 표상이자, 계율 준수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열매 없이 머무는 종교의 표상입니다.
주님께서는 병자를 만지시기 전에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Si licet sabbato curare?,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율법은 생명을 위해 주어졌고, 고치는 것은 생명을 섬기는 일이므로 이 질문은 스스로 답을 줍니다. 그러나 at illi tacuerunt, 그들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 침묵은 복음에서 가장 혹독한 고발입니다. 자비보다 공식을 더 좋아하는 이들의 침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apprehensum sanavit eum ac dimisit, 그를 붙잡아 고쳐 주시고 돌려보내셨습니다. 인간의 비참 앞에서 주저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몸짓 그 자체처럼 빠른 세 동사입니다.
마지막 반문은 일상의 명백한 사실로 논증을 마무리합니다. Cujus vestrum asinus aut bos in puteum cadet, et non continuo extrahet illum die sabbati?,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곧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짐승에 대한 연민이 거리낌 없이 안식을 깨뜨린다면, 사람에 대한 연민은 더욱 그러합니다. 안식일은 치유로 인해 어겨진 것이 아니라, 치유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흐릅니다. non poterant ad hæc respondere illi, 그들은 이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진리는 명백할 때 사람을 회개시키거나 말문을 막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III. 일곱째 날에 이루어지는 좋은 일
두 독서는 서로 다른 어조로, 하느님의 일에는 멈춤이 없다고 말합니다. 바오로는 시작하신 분께서 완성하실 것이라고 단언하고, 예수님께서는 안식의 날에 아버지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안식일은 창조 후 하느님의 쉬심을 경축했지만, 구원은 새로운 안식일을 들여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바로 사랑 때문에 일하시는 안식일입니다. 새 창조의 일이 아직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종병 환자를 고치시는 것은 필리피 신자들의 세례 때 시작된 opus bonum을 이어 가시는 것이며, 당신이 시작하신 것을 완성으로 이끄시는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화답송은 두 기슭 사이의 경첩 구실을 합니다. Magna opera Domini, 주님의 업적은 위대하시고, justitia ejus manet in sæculum sæculi, 그분의 의로움은 영원무궁히 존속합니다. 존속하는 그 의로움이야말로 바오로가 열매로서 청하는 의로움이요,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행하시는 의로움입니다. memoriam fecit mirabilium suorum, 당신의 기적들을 기억하게 하신 하느님은 내민 손을 거두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감옥과 식탁 사이에서, 서간과 치유 사이에서, 교회는 하느님의 신실하심이 먼 약속이 아니라 진행 중인 일임을 배웁니다. 그 일은 쇠사슬과 안식일들을 가로질러 마침내 그리스도의 날에 이를 것입니다.
IV. 완결에 이른 일의 첫 열매이신 마리아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실 것이라고 고백할 때, 교회의 신앙은 마리아에게서 그 약속의 완성된 얼굴을 알아봅니다. 그분은 opus bonum이 원죄 없으신 잉태 때 시작되어 성모 승천 때 중단도 후퇴도 없이 완성에 이른 피조물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perficiet usque in diem Christi는 더 이상 희망이 아니라 완결된 역사입니다. 우리에게 길인 것이 마리아에게는 도착입니다. 동정 마리아는 필리피 성도들 가운데 첫째이시며, 시작된 은총이 아무런 저항도 만나지 않고 온전하게 그 끝에 이른 분이십니다.
바오로의 기도는 이름을 부르지 않은 채 마리아의 초상을 그립니다. 그는 지식 안에서 넘치는 사랑을 청하는데, 마리아는 conservabat omnia verba hæc, conferens in corde suo, 루카 2,19에 따르면 이 모든 말씀을 간직하고 마음속으로 곰곰이 되새기신 분이십니다. 그는 더 나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을 청하는데, 그분은 fiat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더 좋은 몫을 택하셨습니다. 그는 의로움의 열매를 청하는데, 그분의 열매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fructus ventris tui, 루카 1,42에서 엘리사벳이 환호한 태중의 열매입니다. 복음의 수종병, 곧 몸을 부풀게 하면서도 채워 주지 못하는 갈증은 마리아의 충만함과 정반대입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비우셨기에 은총이 가득하십니다.
침묵의 교훈도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완고함 때문에 입을 다물었고, 자비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동의로써 침묵하셨고, 십자가 아래에서의 그분의 침묵은 가장 어두운 날에 하느님께서 완성으로 이끄시던 일에 대한 온전한 동의였습니다. 거부하는 이의 말없음이 아니라 믿는 이의 침묵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날에 순수하고 흠 없는 모습으로 이르기를 기도할 때 주님의 어머니께 전구를 청합니다. 각 신자 안에서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 좋은 일을, 그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모습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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