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성사와 숨겨진 누룩

글: Prof. Dr. Daniel C. Afonso · 업데이트
Sacramentum hoc magnum est, ego autem dico in Christo et in Ecclesia.
에페 5,32
연중 제30주간 전례는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듯한 두 본문을 한데 모읍니다. 에페소서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결합하는 혼인의 신비를 관상하고, 루카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두 비유, 곧 겨자씨와 숨겨진 누룩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바오로의 교의적 밀도와 비유들의 서사적 가벼움 사이에는 하나의 실, 곧 안에서부터 자라는 신비의 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위대함으로 자신을 강요하지 않고, 친교로 퍼져 나갑니다. 교회는 세상 위에 덧씌워진 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신부이며 나무가 되는 작은 씨앗입니다. 이 본문들을 함께 읽는 것은 구원이 혼인의 형태와 싹트는 리듬을 지니고 있음을 배우는 일입니다.
I. 혼인적 결합의 위대한 성사
에페 5,21-33의 단락은 무엇보다 가정 규범이 아니라 계약의 그리스도론입니다. 바오로는 상호 순종으로 시작합니다. subjecti invicem in timore Christi, 곧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에페 5,21). 그리고 이 첫 구절에서 혼인을 단순한 권력의 위계로 만드는 모든 해석을 해체합니다. 사도가 묘사하는 것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가 사랑받는 이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것입니다. 모범은 모호함 없이 주어집니다. Christus dilexit Ecclesiam, et seipsum tradidit pro ea,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에페 5,25). 내어 줌의 동사는 수난의 동사와 같습니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것은 죽는다는 뜻입니다.
이 내어 줌의 목적은 신부의 성화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lavacro aquæ in verbo,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에페 5,26)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는데, 이는 세례에 대한 투명한 암시이며, 교회를 non habentem maculam, aut rugam, 티나 주름이 없는(에페 5,27)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세우십니다. 세 가지 술어가 종말론적 신부를 정의합니다. 광채, 흠 없음, 나무랄 데 없는 거룩함입니다. 바오로는 창세기 2,24, 곧 둘이 한 몸이 된다는 말씀을 인용하며 결론짓고, 이 신비가 크다고 선언하며 그것을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련지어 해석합니다(에페 5,32). 불가타는 mystḗrion을 sacramentum으로 옮겼고, 이 옮김에서 혼인에 관한 성사 신학 전체가 태어납니다. 부부의 사랑은 계약의 은유가 아니라, 그 효과적인 표징입니다. 인간의 육신이 하느님 사랑의 언어가 됩니다.
II. 하느님 나라의 씨앗과 누룩
루카 13,18-21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두 번 던지시는 물음에 응답합니다. Cui simile est regnum Dei?,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은가?(루카 13,18). 이중의 물음은 모든 고립된 이미지의 불충분함을 드러냅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떤 비교도 넘어서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제시하십니다. 하나는 남성적이고 농경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적이고 가정적인 것입니다. 첫째는 어떤 사람이 자기 정원에 뿌린 겨자씨로, 그것이 arborem magnam, 큰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듭니다(루카 13,19). 대비는 아찔합니다. 가장 작은 씨앗이 가장 큰 환대를 낳습니다. 새들의 이미지는 다니 4장과 에제 17장을 메아리치는데, 거기서 품어 주는 나무는 민족들을 보호하는 나라를 상징합니다.
둘째 비유는 장면을 집 안으로 옮깁니다. 한 여자가 누룩을 가져다 밀가루 서 말 속에 abscondit, 숨겨 넣어 온통 부풀게 합니다(루카 13,21). 동사가 결정적입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섞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숨어서, 고요히, 알아차릴 수 없게 작용하지만, 그럼에도 반죽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세 말, sata tria는 창세기 18,6의 아브라함의 환대를 떠올리게 하며, 그렇게 발효는 계약의 울림을 얻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전체를 물들이는 작은 것의 힘입니다. 그 안에서 크게 시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은 광대하게 끝납니다.
III. 안에서부터 자라는 신비
두 독서의 종합은 하나의 논리, 곧 온전한 친교로 완성되는 숨은 성장의 논리를 드러냅니다. 에페 5장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하시는 신부이고, 루카 13장의 하느님 나라는 안에서부터 부풀어 오르는 씨앗과 누룩입니다. 두 경우 모두 시작은 아주 작고 완성은 충만합니다. 겨자씨와 세례의 씻음은 드러나지 않는, 거의 보이지 않는 몸짓이지만, 그럼에도 그것들로부터 새들을 품는 나무와 빛나는 흠 없는 신부가 나옵니다. 구원의 역사는 정복으로 나아가지 않고, 발효로 나아갑니다.
더 있습니다. 혼인의 이미지와 싹틈의 이미지는 작음이라는 같은 걸림돌 안에서 만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직 티와 주름이 있는 신부를 위해 당신을 내어 주시고, 하느님 나라는 아직 나무가 아닌 씨앗에 맡겨집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에 겁니다. 화답송 시편은 충실한 가정에 대한 축복으로 이 어조를 확인합니다. uxor tua sicut vitis abundans, 너의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으리라(시편 127,3). 그리고 가정의 풍요를 주님에 대한 경외와 연결합니다. 열매 맺는 포도나무, 쉼터가 되는 나무, 부풀어 오르는 반죽, 모든 것이 같은 진리를 노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숨겨진 것을 당신 영광의 자리로 삼으십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그분의 방법입니다.
IV. 마리아, 티 없는 신부이자 누룩의 여인
이 본문들의 마리아론적 열쇠는, 마리아께서 언급되지 않으시더라도, 바오로의 어휘 자체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non habentem maculam, 티 없이(에페 5,27) 당신 앞에 세우시는 교회는 역사 안에서 실현된 구체적인 얼굴, 곧 티 없으신 동정녀의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부가 마지막에 될 모습을, 마리아께서는 처음부터 이미 지니고 계십니다. 교부 전통과 교도권은 Ecclesia immaculata 안에서, 대칙서 Ineffabilis Deus가 잉태 순간부터 모든 흠에서 보호받았다고 선포한 분의 선취된 표상을 읽었습니다. 마리아는 신부의 한 지체일 뿐 아니라, 순수한 상태의 신부이시며, 온 몸에 약속된 거룩함의 눈에 보이는 담보이십니다.
누룩의 비유는 두 번째 열쇠를 제공합니다. 누룩을 반죽 속에 숨겨 온통 부풀게 하는 mulier(루카 13,21)는 관상적 읽기에서, 온 인류를 부풀게 할 말씀을 당신 태중에 숨기신 분의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abscondit의 여인, 침묵 속에 간직되는 것의 여인이시며, 루카 복음은 그분께서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셨다고 거듭 강조합니다(루카 2,19). 하느님 나라의 누룩은 먼저 나자렛의 한 젊은 여인의 태중에 숨겨졌습니다. 그분 안에서 겨자씨는 땅을 만났고, 그분 안에서 세상의 밀가루는 은총의 부풀림을 받았습니다. 구원하는 작음은 여인의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름 없는 신부는 어머니의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의 세 이미지, 곧 영광스러운 신부, 품어 주는 나무, 부풀어 오른 반죽은 마리아 안에서 그 인격적 종합을 찾습니다. 그분은 에페 5,32의 위대한 신비가 약속이기를 멈추고 육신이 된 피조물이십니다. 그분을 관상하는 것은 온 교회가 장차 될 모습, 곧 찬란하고 거룩하며 나무랄 데 없는 모습을 미리 보는 것입니다.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예외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는 첫 열매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종 안에서 이루신 일은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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