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여러분 안에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고 성취하시네.

«Non Ex operibus sed secundum misericordiam salvos nos fecit»: Paulo, o samaritano e Maria

글: · 업데이트

Deus est enim, qui operatur in vobis et velle, et perficere pro bona voluntate.
Fl 2,13

성 카롤로 보로메오(성 카를로 보로메오)의 기념일은 오늘 두 가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두 가지 기억은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영혼을 이끌어 가지만, 서로를 보완합니다. 필립비서서(필립 2장)는 우리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일구어내야 한다고 명령하고, 루카복음(루카 14장)은 우리가 모든 소유를 포기하라고 요구합니다. 시편 26(27)편은 믿는 자의 유일한 기도인 “Unam petii a Domino“, “주님께 한 가지 간구하오니” (시 26,4)를 통해 두 가지 사이의 연결고리를 제시하며, 이는 주님의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독서들은 우연하게 배치된 것이 아닙니다. 이 독서들은 노력과 포기가 은총의 가격이 아니라, 그 결과임을 가르칩니다.

I. 이미 구원받은 이의 두려움과 떨림

바울의 명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근거를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씁니다.

cum metu et tremore vestram salutem operamini“너희 구원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일구어내라” (필립보서 2:12)라고 말하며, 다음 구절의 인과적 연결을 통해 즉시 펠라기우스적 해석을 배격한다.Deus est enim, qui operatur in vobis et velle, et perficere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원하고 행하시는 것을 모두 수행하십니다” (필립보서 2:13)라고 사도는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이 두려움은 불확실한 주인의 노예가 느끼는 불안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 안에 일하시는 것을 느끼는 피조물의 경외로운 떨림이며, 그 작업에 반항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는 것입니다.

파울로가 선택한 공동체의 이미지는 천문학적이고 밝습니다. 필립비 사람들은 별처럼 빛나는 하늘의 존재로 비유되어야 합니다.

filii Dei, sine reprehensione in medio nationis pravæ et perversæ“하느님의 결함 없는 아들들로서, 왜곡되고 타락한 세대 가운데서 빛나게 (필립보서 2:15)”sicut luminaria in mundo“우주의 별들처럼”이라는 구절에서, 신자에게 세 가지가 요구됩니다. 이를 구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불평 없이 순종하기,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기, 희생의 제사에서 기뻐하기. 절 16의 동사, 생명의 말씀은 담고 있다.“생명의 말씀을 보존한다”는 표현은 포르투갈어에서 그 깊이를 잃기 쉽습니다. ‘보존하다’는 유지하고, 간직하며, 내면적으로 포용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신자는 단순히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릇이 넘치는 것을 담아내듯이 말씀을 자신의 내면에 품고 간직합니다.

II. 먼저 앉아 지출을 계산하다

루카 복음서는 군중들에게 쉽게 열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제시합니다.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랐고, 그 절정에서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Si quis venit ad me, et non odit patrem suum, et matrem

“만일 누군가 내게 오거든 부모를 미워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26). 동사 ‘미워하다’는 감정적인 적대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선호를 의미하는 세미틱어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모든 것보다 더 큰 사랑 속에서 존중하는 것이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27)는 말은 루카가 세 번 반복하는 주제이다.

건물과 왕에 관한 두 개의 쌍둥이 비유는 왜 이 요구가 급진적이고 충동적인 것이 아닌지 설명한다. 성전을 짓는 사람은 먼저 앉아서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루카 14, 28) 아니면 기초가 완성되지 않은 채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다. 전쟁에 나가는 왕은 먼저 십만 명으로 이길 수 있는지, 이십만 명으로 이길 수 있는지 계산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맹목적인 포기나 포기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포기하는 것을 요구한다. “먼저 앉아서 자신의 소유를 세어보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루카 14, 33)

qui non renuntiat omnibus quæ possidet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러한 열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이는 전체적인 계산에서 나온 결과이다.

III. 은총이 작용하고 노동이 응답한다

두 가지 읽기 사이의 긴장은 은총의 신학적 실현에 도달하는 정확한 지점에서 사라진다. 바오로 사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원하고 성취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루카는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다. 이 두 가지 진술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다. 바오로가 요구하는 노동은 하나님께서 미리 앞서서 지지해 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루카가 요청하는 포기는 이 노동이 부모, 재산, 그리고 자신의 삶과 마주할 때 역사적으로 취하는 형태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날 예배가 구현하는 공식을 정립했다.

qui fecit te sine te, non iustificat te sine te

“그분께서 너를 위해 너 없이 정의하지 않으시리라.” 인간 협력은 은총에 아무것도 더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은총이 행해지는 것이다.

응답 시편은 파울린의 두려움과 복음의 계산 사이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주님은 나의 빛과 구원, 그분에게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시 26,1). 여기 두려움과 진정함의 비밀이 있다.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작용 앞에 두려워하는 것은 신성한 은총의 표현이며, 동시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 빛이 그를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바울이 시편 26:17에서 말하는 제물, 만일 내가 제물로 드려질지라도은 시편에서 그 평온함을 찾는다. 제물에 드려지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집에 머무르는 것이다.

IV. 마리아, 완벽한 포기 계산

처녀 마리아는 이 두 독서에서 완벽하게 일치하는 존재이다. 어느 독서도 그녀를 명시하지 않지만, 둘 다 그녀를 묘사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비판 없이 부탁할 때(필립비서 2:15), 전통은 순결한 마리아가 유일하게 처음부터 비판 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이를 인식한다. 나사레에서의 ‘예’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노동의 모범적인 사례이다. 마리아는 은총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그녀의 구원을 성취했다.

마리아는 루카가 복음의 중심에 놓은 두 비유를 또한 완벽하게 실현한다. 그녀는 먼저 앉아서 비용을 계산한 사람이며, 따라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십자가 아래에서, 어머니께서 서 계셨다는 말은 마리아가 부주의한 건축가의 기초 없이 십자가를 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바울이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라고 말할 때(필립비서 2:16), 마리아는 생명의 말씀을 육체로 간직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남기고 주님을 간직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녀를 보라. 그녀는 두려움이 평화가 되고, 계산이 선물이 되며, 포기가 하나님을 소유하게 하는 완벽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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