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하는 아들아: 마비된 자, 용서, 그리고 죄인들을 소개하는 마리아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비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믿어라, 아들아, 네 죄가 사해질 것이다.”
(마태오 9:2)
장애인을 치유하신 예수 (마태오 9, 1-8)는 마태오 복음서(제9장)의 두 번째 기적 시리즈 첫 번째 사건이며,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마태오 9,3, 서술된 바와 같이 서기관들의 모독죄 고발)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그 답변은 육체적 치유를 통해 보이지 않는 용서의 권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육체적 치유는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용서의 증거입니다.
마태오는 이 사건을 간결하게 서술합니다. 루가(루카 5, 17-26)와 마르코(마르코 2, 1-12)는 장애인을 지붕을 통해 내려 보내는 친구들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지만, 마태오는 이러한 서술은 생략하고 핵심으로 돌아가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마태오 9,2) 예수님이 응답하신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이 “보신” 믿음은 장애인을 운반한 친구들의 믿음을 의미하며, 명시적으로 장애인의 믿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세부 사항은 신학적으로 매우 귀중한데, 장애인의 치유/용서는 다른 이의 믿음을 통해 중재된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중재, 다른 이를 예수님께 데려다 드리는 것이 치유를 위한 조건입니다.I.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중재를 통한 치유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Videns fidem illorum)”는 복음서에서 중재에 대한 가장 주목할 만한 설명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장애인을 직접 믿음의 상태를 묻지 않으셨고, 그 전에 장애인의 영적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장애인을 운반한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행동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순수한 중재의 형태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가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을 때, 믿는 이들이 그를 예수님께 데려다 드리는 것입니다.이 구조는 마리아를 통한 중재의 마리아학(Mariology)의 신학적 모델입니다. 마리아는 개인의 믿음을 대신하지 않으며, 다른 이의 영적 약점이나 죄의 마비, 또는 믿음의 결여로 스스로를 예수님께 데려다 드릴 수 없는 이들을 운반할 수 없습니다. “와인 부족하다” (요한복음 2,3)는 이 일반적인 중재의 표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자신의 약점이나 믿음의 결여로 인해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는 이들을 데려다 드립니다. 마치 장애인을 운반한 친구들처럼, 마리아는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스스로를 예수님께 데려다 드릴 수 없는 이들을 운반합니다.“성인의 중재”의 신학은 이 사건에서 강력한 복음적 근거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장애인 친구들의 믿음을 통해 행동하신 것처럼, 신의 행동은 다른 이의 믿음을 통한 중재를 조건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직접 중재하지 않으셔도, 다른 이의 믿음을 통해 행동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백성(시편 17,7)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서 하나님의 원격 행동(마태오 8,8)을 볼 수 있습니다.하지만 절망적인 병자의 이야기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즉, 간절한 기도가 부족한 이들에게 은총이 도달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러한 간절한 기도의 공동체적 차원도 중요합니다. ‘그들의 믿음’은 개인의 믿음이 아닌, 공유되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믿는 이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공간입니다. 병든 회원이나 부재중인 이들을 위해 공동체가 하는 기도는, 친구들이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려가고, 기도와 현존을 통해, 스스로 일어서서 걸을 수 없는 이들을 치유하는 것과 같은 교회적 행위입니다.II. «네 죄가 사해졌어»: 우선순위의 스캔들
예수님의 병자에게 하신 말씀은 예상치 못한 답변입니다. “일어나라, 걸어라”가 아닌, “네 죄가 사해졌어” (마태오 9,2)라고 하신 것입니다. 육체적 치유는 서술의 순서상, 서기관들의 스캔들에 대한 답변으로 나옵니다. 이 순서, 먼저 사면 후 치유는 예수님께서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병자의 육체적 고통이 아닌, 그의 영적 상태(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죄의 사면은 가장 깊은 치유입니다. 다리가 움직이는 것은 이 더 깊은 치유의 신호입니다.“어떤 서기관들이 서로 말하길, 저 사람이 하나님께서 외우신 자가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다” (마태오 9,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께 대한 모욕이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은 예수의 주장을 옳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이 전제를 확인해줍니다. 만약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고, 예수가 사면한다면, 예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첫 번째 선택지를 선택했지만, 교회는 두 번째 선택지를 따랐습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사람에게 죄를 사해주는 권세가 아들에게 있음이라 하시니, 곧 땅에서 죄를 사해주는 권세를 가지신 것” (마태오 9,6) 이 말씀은 육체적 치유가 보이지 않는 사면의 증거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는 가시적인 것(병자가 걸어다니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사면)을 증명합니다. 이 구조, 가시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성사적 구조입니다. 세례의 물은 세례의 은총을 상징하고,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상징하며, 고백의 말은 사면을 상징합니다.성사 중 고해성사는 이 병자의 치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같은 교부들은 이 치유를 고해성사의 현대적 유형으로 해석했습니다. ‘죄의 마비’는 영적 걸음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중재자(교회)를 통해 치유를 받는 것은 병자가 치유자(치유자)에게 나아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선물, 사면과 영적 회복 능력은 그리스도인 삶의 회복을 의미합니다.«Confide, fili»: 하느님의 자비로운 용서
«용기 있어라, 아들아» (마태오 9,2, «tharsei, teknon»), 용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예수님은 마비된 이에게 따뜻한 말과 격려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teknon» («아들아», «아이야»)은 애정 어린 호칭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차가운 심판자의 목소리로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마비된 이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아는 자의 마음으로 용서하십니다. «용기 있어라»는 강요가 아닌, 상황이 변했음을 알리는 소식,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이제 가능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선포입니다.이러한 용서의 따스함은 마태오 서신의 구원론에서 덜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측면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죄인과 법정 사이의 거래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 회복입니다. «용기 있어라, 아들아»는 루카 복음의 거지 아들 이야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마중 나가기 전에 한 말과 닮았습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마비된 이가 회개 연설을 마치기 전에 선행됩니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죄를 고백했는지, 개선할 것을 약속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그를 믿는 이들의 신앙을 보셨습니다.성모 마리아의 하느님의 성심에 대한 헌신은 이 «Confide, fili»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성모는 이 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람이며, 그분을 품에 안고, 먹이고, 돌보고, 십자가에 달린 분을 따라 고난을 겪었습니다. 따라서, 성모는 자신의 중재로 영적 자녀들이 «용기 있어라, 아들아»라는 말씀을 경험하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부모와 아들 사이의 관계»로 이끌어 주시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성모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이 말을 직접 듣고, 온몸으로 체험한 분이기에, 그녀의 중재를 통해 영적 자녀들은 용기를 얻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안아 주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죄인들의 피난처»라는 마리아 칭호는 그녀의 중재가 죄인들의 구원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합니다. 마리아는 단순히 용서를 받는 이가 아닌, 용서를 구하는 이들을 위한 피난처, 안식처입니다. 마치 마비된 이의 친구들이 그를 버리지 않고 함께 그의 회복을 기다린 것처럼, 마리아는 그녀의 영적 자녀들을 하느님의 용서와 치유로 이끌기 위해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예수님께로 데려가, 그분의 자비로운 용서를 경험하게 합니다.IV. 하느님을 찬양하는 군중: 용서의 열매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는 두려움에 휩싸여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러한 힘을 사람에게 주신 하느님을 우리가 찬양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마태오 9,8). 이 사건은 단순히 마비된 이의 치유로 끝나지 않고, 군중의 집단적인 하느님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마태오는 이 치유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차원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힘을 사람에게 주신 하느님을 우리가 찬양합시다»라는 군중의 외침은, 예수님과 마비된 이의 관계에서 비롯된 용서의 힘을 모든 이가 함께 경험하고, 하느님을 찬양하게 만듭니다.마태오가 «사람에게»라고 표현한 것은 이 용서의 힘이 예수님에게만 국한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마태오는 «사람에게»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 용서의 힘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고, 교회 공동체 전체로 확장됨을 암시합니다. 이는 마태오 18,18 («하늘에서 맺힌 것이 땅에서도 맺힐 것이다»)과 요한 20,23 («너희가 죄를 용서하면, 죄가 용서될 것이다»)에서 언급된, 용서의 전승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이 마비된 이에게 보인 용서의 힘은 교회가 관리하는 성사, 특히 고해성사(용서 성사)의 직접적인 근거가 됩니다.마리아의 역할은 용서의 이 공동체적 측면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녀는 용서의 경험을 가장 먼저 한 이로서, «죄의 용서»의 광범위한 의미를 살펴봅니다. 마리아의 무염시태와 하느님의 아들의 구원 활동은 이 성사의 근원입니다. 마리아의 로사리오 기도, 고해성사 전의 기도, 그리고 우리 주님 성모님에게 드리는 모든 공경은 용서의 성사를 준비하고, 용서의 힘을 강화합니다. 이러한 기도와 공경은 용서를 구하는 이들을 위한 마리아의 중재와 함께, 영적 자녀들이 용서의 길을 걷도록 도와줍니다.마리오로지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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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Locus Mariologicus 도서관의 작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마리학 석사 과정은 성경, 교부들의 글, 교회의 가르침, 첫 번째 교리부터 현대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학문적인 지도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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