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마태오 16, 13-20
주님은 시몬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페트로스다. 이 바위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마태오 16, 18)
I. 제1독서: 이사야 22, 19-23
주님은 세바나, 왕궁 관리인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그 직위에서 끌어내리겠다.” (이사야 22, 19) 그리고 엘리아킴, 헬키아스의 아들을 그 자리에 앉히신다. “내가 다윗의 집 문지기를 그의 어깨에 놓으리니, 그가 열어야 할 것은 아무도 닫지 못하고, 닫아야 할 것은 아무도 열지 못하리라.” (이사야 22, 22)바위 위에 지반을 다지는 열쇠는 위임된 권위의 상징이다. 엘리아킴은 왕의 위임으로 행동하며, 그의 권위는 항소할 수 없는 완전한 것이다. 세바나의 교체와 엘리아킴의 임명은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표징이다. 하나님은 실패한 자를 제거하시고 충실한 자를 세우신다. 다윗의 집 문지기의 열쇠는 요한계시록 (3, 7)에서 다시 등장하며,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한, ‘다윗의 열쇠’라는 표현은 성시 찬송가에서 아드벤트 기도의 ‘클라비스 다비드(Clavis David)’로 반복된다.
II. 제2독서: 로마서 11, 33-36
바울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에 대한 그의 사색으로 로마서 11장을 마무리하며, 아름다운 찬양으로 끝맺는다. “오, 하나님의 깊도여!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하나님의 깊도는 헤아릴 수 없고, 그의 길은 탐구할 수 없다.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가? 누가 주님의 생각을 측정하는가?” (로마서 11, 33-34) 그리고 삼위일체에 대한 찬양으로 마무리한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영광은 세세토세까지 그분에게 있으리라.” (로마서 11, 36)이 찬양은 논리적 결론이 아닌 경배의 표현이다. 지식의 한계를 인정한 후, 바울은 경외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지혜와 지식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배는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신비로움을 찬양하는 것이다.
III. 복음: 마태오 16, 13-20
예수님은 가필로파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말하느냐?” (마태오 16, 13). 대답은 다양했다. 요한 세례자, 엘리야, 제림야, 혹은 예언자 중 한 명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질문을 구체화하신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누구라 말하느냐?” (15절). 베드로는 대답한다. “당신은 그리스도, 하느님의 살아 계신 아들입니다.” (16절) 예수님은 그의 고백을 칭찬하신다. “이것은 내 아버지께서 하늘에 계신 분께서 주신 것이 아니고, 육과 피로 인한 것이 아니니라.” (17절) 그리고 이어서 역사적인 행위를 하신다. “네가 페트로다. 이 돌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네. 그리고 지옥의 문이 이를 이길 수 없을 것이네. 천국의 문의 열쇠를 주겠네. 땅에서 묶는 것은 하늘에서도 묶이고, 땅에서 풀리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8-19절) 천국의 문의 열쇠는 이사야 22장의 다윗의 집 열쇠를 떠올리게 한다. 같은 위임된 권위 구조와 인간의 반전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베드로의 고백은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받은 계시 때문이다. 교회를 세우는 돌은 베드로의 덕이 아니라, 하느님이 베드로에게 베푸신 믿음이다.
IV. 마리아와 다윗의 열쇠
아드벤트의 찬가 “클라비스 다비드(Clavis David)”는 이사야 22, 22절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에게 노래한다. “오 다윗의 열쇠여, 오 이스라엘의 지팡이여, 열어주는 이도 없고 닫는 이도 없는 이여,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 속에 갇힌 죄수를 데려오소서.” 다윗의 열쇠는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마리아학은 마리아가 아들을 세상에 데려오며 문을 여는 이로 보았는데, 이는 엘리아킴이 위임받은 열쇠를 받은 것과 같다. 마리아는 세상에 아들을 가져오며, 열고 닫는 권위를 지닌 이이다. 로마서 11장 33-36절의 도글로시아는 마가복음 11장 24절의 마리아의 찬가와 공명한다. “하느님의 심판은 알 수 없는 것이고, 그 길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말하노니, 그분은 강력한 분이시다.” 마리아는 아기를 잉태하고, 창조하고, 십자가까지 따라간 것으로, 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두 기둥이다. 베드로는 열쇠의 권위를 가지고, 마리아는 중재의 모성적 마음을 가지고 있다. 베드로가 먼저 “당신은 그리스도, 하느님의 살아 계신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다면, 마리아는 그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창조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통해 그 고백을 먼저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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