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희망 속에 잠든 이들: 제1부

마리아와 부활의 희망 속에 잠든 신자들

개념을 정리하며.
천국이라는 말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옥좌에 앉아 계시는 곳을 뜻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궁전에 계시고, 하늘에는 하느님의 옥좌가 있네. 그분의 눈은 살피시고 그분의 눈꺼풀은 사람들을 헤아리시네”(시편 11,4). “하늘은 주님의 하늘이요, 땅은 사람들에게 주셨네”(시편 115,16). 하느님께서 내려오시는 곳도 바로 이 장소입니다. “주님께서 시나이 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셨다. 주님께서 모세를 산봉우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갔다”(탈출기 19,18-20). 그러나 하늘과 땅이 하느님을 담을 수 없음을 알아보는 것도 성경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기가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저 높은 하늘도 당신을 모실 수 없는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1열왕기 8,27). 하느님의 “거처”에 관한 이 역설에 더하여,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종말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내다봅니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대로 의로움이 깃들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립니다”(2베드 3,13). 간단히 말해, 천국은 복된 이들이 영광스럽게 된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하여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머무를 상태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7).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요한 14,3).

지옥이라는 말로 우리는 마귀들과, 뉘우침 없이 죽은 죄인들이 하느님의 현존에서 제외되어 지은 죄에 따라 정도를 달리하며 영원히 고통받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러한 교회의 개념들은 마태 13,36-43; 25,31-46 같은 신약 성경 구절에 근거하며, 참으로 악의를 품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지옥의 가능성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하나의 끈이 있으니, 곧 구원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분께 굴복하게 되면, 아드님께서도 친히 당신에게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분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려는 것입니다”(1코린 15,28). “그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 아름답고 기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제때에 드러난 그분의 증언입니다”(1티모 2,3-6).

연옥이라는 말로 우리는 정화(katarsis)를 뜻하는데, 이는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죽었으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자신의 개인적 죄가 보속되어야 하고 지복직관을 누리기 전에 영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이들의 상태입니다. 2마카 12,38-46, 마태 5,25-26, 1코린 3,11-15 같은 성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할 수 있지만, 이 구절들은 연옥(= 정화)의 정체를 분명히 밝히지는 못합니다. 그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리스도교 전통의 요소들에 의지해야 합니다. 곧 하느님의 정의, 2세기부터 이어진 죽은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그리고 희망 속에 잠든 이들의 dies natalis(탄생일)를 기억하는 성찬례 거행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215년 선종), 오리게네스(254년 선종), 요한 크리소스토모(407년 선종), 테르툴리아누스(225년 선종), 치프리아노(258년 선종), 아우구스티노(430년)와 같은 교부들은 죽음 이후의 여러 정화 방식과, 기도를 통하여 사랑하는 죽은 이들과 이루는 친교에 관하여 썼습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특히 그리스도교 서방과 동방의 전례 환경에서 널리 퍼졌습니다. 리옹 공의회(1274)와 그 뒤 피렌체 공의회(1438-1445)에서는, 아직 지복직관에 합당하지 않은 이들이 죽음 이후에 견디는 정화의 고통과, 그토록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한 전구로서 기도와 선행이 지니는 가치에 관한 생각이 확언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공의회들에서 연옥의 불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개신교 종교 개혁에서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죽은 이들을 위한 대사의 가치는 물론 연옥의 존재까지 거부하게 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반종교 개혁은 연옥의 지속 기간과 본성은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연옥 교리와 기도의 가치, 특히 연옥에 머무르는 모든 이를 위한 성찬례의 가치를 힘차게 재확인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죽음 이후에 정화되는 모든 이와 순례하는 교회가 이루는 친교를 확언하며 트리엔트와 피렌체의 공의회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을 봅니다. 공의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위엄을 지니시고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시어(마태 25,31 참조) 죽음을 물리치시고 모든 것을 당신께 굴복시키실(1코린 15,26-27 참조) 때까지,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 땅에서 순례하고, 어떤 이들은 이 삶을 마치고 정화되며, 마침내 어떤 이들은 영광을 받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그대로 뚜렷이’ 뵙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비록 방식과 정도는 다를지라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같은 사랑 안에서 친교를 이루며, 모두 우리 하느님께 같은 찬미의 노래를 바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 속하고 그분의 성령을 모신 이들은 모두 한 교회 안에 결합되어 그분 안에서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에페 4,16 참조). 그러므로 아직 이 땅을 걷는 이들과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 잠든 형제들의 결합은 결코 끊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교회의 변함없는 신앙에 따라 영적 선익의 나눔으로 더욱 굳세어집니다. 복된 이들은 그리스도와 더 긴밀히 결합되어 있기에 교회를 거룩함 안에 더 굳건히 세우고, 교회가 이 땅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고귀하게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더욱 넓게 건설되도록 여러 모로 이바지합니다(1코린 12,12-27 참조). 하늘 본향에 받아들여져 주님 곁에 사는 그들은(2코린 5,8 참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덕으로(1티모 2,5 참조) 이 땅에서 얻은 공로를 내보이며, 그분을 통하여,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아버지 앞에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전구하고, 모든 일에서 주님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웁니다(콜로 1,24 참조). 이렇게 우리의 나약함은 형제인 그들의 정성으로 큰 도움을 받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연옥은 하느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뵙기 전에 이루어지는, 고통스럽지만 사랑 안에서 성숙해 가는 마지막 과정으로 이해됩니다. 보편 심판과 더불어 연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종말론적 희망과 마리아의 관계는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Redemptoris Mater에서 깊이 다루어지며, 이 회칙은 마리아를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인 희망의 이콘으로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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