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데르의 마리아론

A mariologia de Alexandre de Alexandria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데르: 교부 마리아론의 선구자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데르(†328년)는 교의적 관점에서 마리아론을 체계적으로 표현한 첫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아리우스에 맞서 성자의 신성을 수호함으로써 에페소에서 마리아를 Theotokos로 선포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312년부터 328년까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그는 처음부터 리코폴리스의 멜레티우스파 분열에 맞서 싸웠는데, 이 분열은 그의 전임자인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 1세(311년 선종)의 박해 시기에 터져 나왔습니다. 멜레티우스파는 이집트 도시 리코폴리스의 주교로서 교회에 대한 엄격한 관념 때문에 326년경에 세상을 떠난 멜레티우스(라틴어. Meletius)의 이름을 딴 종교 운동의 추종자들입니다. 제1차 세계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325년) 무렵, 이 분열은 법적으로 알렉산데르에게 속한 주교들의 거의 절반과 알렉산드리아의 사제들과 부제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니케아의 제6조 법규는 이집트 본토와 테바이스, 리비아, 펜타폴리스에 대한 알렉산드리아 주교좌의 특권을 재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328년 4월 17일에 일어난 알렉산데르의 죽음 때까지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리우스 위기가 시작됩니다. 실제로 318년 무렵 알렉산데르는 자기 교회 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제 가운데 한 사람이며 자신이 바우칼리스 본당을 맡겼던 아리우스의 활동으로 형성된 이념 분파의 반대에 맞서게 되었습니다.
논의와 토론이 이어진 시기를 거친 뒤, 주교는 백 명의 주교가 모인 시노드를 소집하였고, 이 시노드는 319년에 아리우스를 다른 사제 다섯 명, 부제 여섯 명, 주교 두 명과 함께 파문하였습니다. 시노드 이후 알렉산데르가 “모든 곳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료 전례 봉사자들에게” 보낸 회람 서한 Henos somatos는 아리우스 문제에 대한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우스와 다른 동방 주교들의 간섭에 반발합니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파문된 이들에게 지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아리우스 자신이 에우세비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갈등의 이유를 전합니다. 알렉산데르에 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우리를 도시에서 쫓아냈습니다. 우리가 그가 공개 선언에서 말하는 대로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나 하느님, 언제나 아들. 함께 아버지, 함께 아들”. 아리우스가 걸림돌로 여긴 정확한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알렉산데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성자의 신적 탄생의 영원성과 그 본체적 일치를 강조하였으며, 이는 324년에 그의 서신 상대인 테살로니카의 알렉산데르에게 보낸 또 다른 교의적 편지에서 드러납니다.
또한 아리우스가 자신의 그리스도론 주장을 온전히 확인하면서 반응한 것도 분명한데, 그 주장은 특히 그의 Thalia 발췌문에 담겨 있습니다. Thalia는 그가 유배 전 같은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쓴 작은 논고로, 알렉산드리아 신학자 분파들 사이의 논쟁 한복판에서 문학적이며 교리적인 혁신을 이루었고, 알렉산데르는 그 논쟁에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자신의 교리를 정식화하며 개입하였습니다.
아리우스 주장의 지나친 독창성은 동방 주교들에게서 신뢰를 얻지 못하였으나, 그들은 그럼에도 아리우스를 비호하였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데르는 324년 안티오키아 시노드에서, 그리고 그 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자신의 사상을 관철시킬 수 있었습니다. 니케아 신앙 정식은 반아리우스적 논쟁의 여지가 있는 세부 사항들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알렉산데르가 결코 homoousios라는 낱말을 쓰지 않았더라도 그의 신학에 따라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의 주교직 마지막 십 년을 차지한 이 교리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알렉산데르는 젊은 부제이며 훗날 그의 후계자가 될 아타나시우스에게서 충실하고 지혜로운 협력자를 만났습니다. 그의 저술인 『아리우스파 반박』에서 우리는 알렉산데르 가르침의 핵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저술로는 몇몇 편지와 단편만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전하는 본문들은 성 아타나시우스의 인용입니다. 마리아론의 관점에서 이 본문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1.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Theotokos 칭호의 사용입니다. 알렉산데르가 한 편지에서 동정녀께 Theotokos라는 칭호를 당연하고 통상적으로 쓰이는 것으로서 드린 사실은, 에페소에서 네스토리우스 및 안티오키아 학파와 벌인 논쟁에서 역사적 준거점이 될 것입니다.
  2. 동정녀들에게 마리아를 그리스도께 봉헌된 삶, 천상 삶의 최고 모범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데르는 테바이스의 번성하던 수도승들의 모범에 따라 이집트에서 이미 공동생활로 조직된 동정녀 그룹들에게 권고합니다. 그의 신학적, 영성적 노선은 아타나시우스와 밀라노의 암브로시오가 널리 따르게 됩니다.

동정녀들에게 보낸 서간
동정성의 모범이신 동정녀

“때의 마지막에 죄를 없애시려고 말씀이신 그분께서는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어 그분에게서 살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께서 사람이셨다는 말을 듣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되셨어도 그분께서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셨고 여전히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그분께서는 라자로를 일으키시고 (…)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면서 당신의 신성으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셨습니다. 참으로 이러한 일들은 이미 그분이 사람이셨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 그러나 그분의 탄생은 다른 사람들의 탄생과 같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오직 한 동정녀에게서만 살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알렉산데르는)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이미 그대 부모에게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서 그대는 덕을 향한 열망의 씨앗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그대에게 준 좋은 교육의 결과로 신랑께서 그대를 만나시어 그대 마음에 말씀하시며, 당신을 위하여 영원히 동정으로 남도록 그대를 설득하셨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늘 삶의 전형이며 모상인 마리아의 처신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타나시우스, Epistula ad virgines)

테살로니카의 알렉산데르에게 보낸 서간
Theotokos

“그다음으로 우리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겉모습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 [Theotokos] 마리아에게서 몸을 받으셨습니다”.
(Epistula ad Alexandrum Thess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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