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십자가 곁에 서 있었네: 마리아의 연민, 히브리서 5장과 아들의 선물”

«Stabat autem iuxta crucem»: a compassio de Maria, hebreus 5 e o dom do Filho
그녀는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서 있었습니다. (요 19,25)

성모의 기억과 고통의 길

성모의 축일인 고통의 여신은 히브 5장과 요한 복음 19장을 통해 고통이 완벽함으로 이끄는 길에 대한 성찰을 제시합니다. 히브 5장 7-9절에서, 저자는 예수님이 고통을 통해 순종을 배웠으며, 이 순종이 영원한 구원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비록 아들로서 순종을 배웠지만, 고통을 통해 완벽해지셨습니다.” (히브 5:8) 이 순종은 성모님이 또한 따르신 길입니다. 시메온이 예언한 대로, 성모님은 “한 칼이 당신의 영혼을 관통할 것” (루카 2:35)이라고 들으셨고, 이 말은 성모님이 아들의 고통을 공유하고 순종하는 여정을 시작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첫 독서: 히브 5장 7-9절

히브 5장 7-9절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이 고통을 통해 순종을 배웠다는 놀라운 진술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순종이 아닌, 존재의 완벽함을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분은 비록 아들로서 순종을 배웠지만, 고통을 통해 완벽해지셨습니다.” (히브 5:8) 이 순종은 성모님의 여정과도 연결됩니다. 성모님은 아들의 고통을 함께 겪으며, 순종의 모범을 보여주셨고, 이는 모든 제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복음: 요한 복음 19장 25-27절

요한 복음 19장 25-27절은 성모의 영원한 모성성을 드러내는 핵심 구절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어머니와 제자를 바라보시며, “여기 너의 아들을 두어라” (요 19:26)라고 말씀하셨고, 제자에게는 “이제 내 어머니요, 너희의 어머니” (요 19:27)라고 위임하셨습니다. 이 순간, 성모님의 모성성은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이제 모든 제자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여기 너의 아들을 두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새로운 인간성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성모님은 아들의 고통을 통해 새로운 인간성을 대변하는 존재가 되셨고, 이를 통해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여자” (요 19:26)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여인” 또는 “모성”을 의미하며, 성모님의 본질과 역할을 강조합니다.

성모의 영원한 모성성

요한 복음 19장의 “여기 너의 아들을 두어라”라는 말씀은 성모님의 영원한 모성성의 상징입니다. 성모님은 아들의 고통을 함께 겪으며,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대변하셨습니다. 이 순간, 성모님의 모성성은 단순한 생물학적 관계가 아닌, 영적이며 보편적인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성모님은 “새로운 에바” (디크테로 에바)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의 에바가 원죄로 인해 고통받는 존재였다면, 새로운 에바인 성모님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분입니다. 성모님의 “여기 너의 아들을 두어라”라는 말은 고통을 통해 새로운 인간성을 탄생시키는, 구원의 현현입니다.

결론

성모의 고통은 단순한 고난이 아닌, 완벽함으로 이끄는 여정입니다. 히브 5장과 요한 복음 19장은 고통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순종을 배우는 길이며, 성모님이 이 길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셨음을 상기시킵니다. 성모님의 영원한 모성성은 모든 제자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며, 고통을 통해 구원의 길을 찾는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합니다.

III. 공감: 고통으로서의 참여와 완성

마리아의 공감 신학은 마리가 아들인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방식이 다른 모든 성인의 고통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단순히 모성애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공모로서입니다. 히브리서 5장에서 아들에 대해 말한 것을 전통은 마리아에게 적용합니다. 마리아 또한 고통을 통해 복종을 배웠습니다. 시메온의 검이 “마리아의 영혼을 관통했다”는 것은 단순한 고통의 은유가 아니라, 구원 사업의 일환에 대한 실제적인 참여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9절에서 “영원한 구원의 원인”으로 묘사된 것입니다.우리 여인 고통의 축제는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협력자로 기념됩니다. 일곱 고통의 마리는 복종을 배우는 여정으로, 히브리서 5장에서 “완성”으로 묘사된 경로입니다. 마리아의 고통은 “피아”를 말하고, 그 “피아”를 끝까지 지킨 고통입니다. 심지어 “피아”가 아들의 십자가를 의미할 때도 말이죠.

IV. 고통의 마리아: 마음을 드러내는 검

시메온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반되는 표징이 될 것이고, 네 영혼에 검이 닿아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이다” (루카 2:34-35). 마리아의 검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계시입니다. 아들의 십자가를 받아들인 어머니의 자세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이나 불신, 사랑이나 무관심, 수용이나 거부 등을 드러냅니다.우리 여인 고통의 축제는 성 십자가의 승천 다음 날에 기념됩니다. 십자가 옆에 서 있는 어머니는 교회가 찬양하는 십자가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마리를 바라보는 것은 신비의 인간적 측면을 놓치는 것입니다. 마리를 바라보지 않고 십자가를 찬양하는 것은 그녀의 구원적 의미를 놓치는 것입니다. 고통의 마리아 기념일은 두 시선을 결합하도록 초대합니다: 찬양받는 십자가와 그 십자가를 받아들인 어머니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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